그렇게 우주가 나선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도움으로 며칠 새, 나는 ‘이시우 작가’ 혹은 ‘이시우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광고인을 동경하던, 펜 몇 번 휘갈기고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를 아주 조금 할 줄 아는 내가 이런 말을 듣다니?
한 때 유행했던 쇼미더머니 비와이 곡 ‘day day’엔 이런 가사가 있다.
“기대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비가 내리는 법이야. 축복은 내가 벌린 입만큼 들어오는 거니까”
노래가 나오기 조금 전이긴 하지만 자신감과 조금의 오만함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뭐라도 해야 기회가 생기네. 생각보다… 쉽네?”
그 이후로도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하며 ‘첫 외주 작업, 첫 전시 등, 첫 인터뷰, 첫 매거진 소개 등’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새로운 분야의 기회’들이 쏟아졌다. 모든 게 새로웠고 닥치는 대로 전부 했다.
겪어보지 못했던 업체와의 미팅, 계약 진행, 인터뷰 등. 새로운 세상을 접할 때마다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새로운 것을 해본다는 뜻에서도 두근거렸지만, 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입장에서 만나는 사회인들은 내가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들이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에도 가슴이 두근거린 건 사실이다.
인터뷰도 계속하고, 계속 작업도 하면서 점점 나는 디자이너, 작가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는 계속해서 왔다. 모든 일들이 순서대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해본 것들을 유형화해봤다.
참여작가 전시, 작은 개인전, 심지어 주점 내 전시까지…
지금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을 조금만 알았더라면 나를 더 알릴 수 있는 프로모션도 기획해볼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 외에도 의류 브랜드와 콜라보로 첫 개인 계약서를 써봤고(이때 공장을 들락날락했는데 대학생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시를 많이 받아서 수염을 길렀다. 응?), 플리마켓에 참가도 하며 자영업자의 기분도 3% 정도 느껴봤다. 안 되는 영어를 하면서 외국인한테 설명해서 결국 굿즈 하나 판 기억이 가장 남는다.
그 외 지금은 서비스 종료된 네이버 PHOLAR 런칭 서포터즈 임명 등등 참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기억이고, 열정이 극에 달아있던 시절이었다. 요즘 옛날 사진들을 많이 찾아보는데, 아마 이때의 열정이 그리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 일들을 하면서 가장 뼈에 새긴 가치.
“역시 뭐라도 해야 기회가 생기네.’
를 되새기는 동시에 중학교 친구에게 같이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하고 싶었던 ‘광고’와 잘해왔던 ‘예술’을 결합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치열하게 보냈고, 다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뤄내게 된다. 이 내용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혹여나 이 글을 보는 분들 중 궁금하거나, 뭔가를 같이해보고 싶다면 편히 연락 주셔도 좋겠다는 마음을 끝으로 두 번째 글을 마친다.